살인자의 고백 _ Camilo José Cela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La familia de Pascual Duarte} by yiaong

죽음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늑대의 발걸음처럼 느리고 구렁이의 몸놀림처럼 징그럽게 다가옵니다. 모든 끔찍한 상상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은 결코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건은 잠시 동안 우리를 숨막히게 하지만, 나중에는 상당히 많은 세월을 선사하니까요. 우리를 완전히 미쳐 버리게 하고 아주 슬프게 하는 광기는 언제나, 마치 안개가 평원을 공격하듯, 결핵이 폐를 공격하듯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도착합니다.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지칠 줄 모르고 전진하지만 맥박이 뛰듯 규칙적으로 천천히, 서서히 다가오지요. 지금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마 내일도, 모레도, 또 한 달 내내 깨닫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그 한 달이 지나가면, 음식에서 쓴 맛이 난다는 걸 느끼기 시작할 거고 추억은 고통스러워질 겁니다. 이미 우리는 낙인이 찍혀 있으니까요. 많은 낮과 밤이 지나면서 우리는 사람을 피하고 홀로 남게 됩니다. 우리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뒤죽박죽인데 그 생각들은 우리 머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겠지요. 그토록 잔인하게 계속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혹 몇 주 동안 별다른 변화 없이 지낼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무관심에 익숙해져서 우리의 존재가 이상해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사악함이 나무처럼 자라고 살쪄서, 이제 우리는 남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게 되지요. 사람들은 다시 우리를 이상한 존재 또는 사랑에 빠져 넋이 나간 존재로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점점 여위어 가고, 턱수염은 갈수록 더 늘어져 버릴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살의를 띤 증오를 느끼기 시작하지요. 그 누가 바라보는 것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픈 게 더 낫지요! 힘을 주어 바라보면 독이 차올라 눈이 아릿아릿합니다. 악마는 우리의 고통을 눈치채고는 자신만만합니다. 본능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요. 불행은 즐겁고 정겹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영혼의 일부가 되어 버린 불행을 넓은 유리 광장 위로 질질 끌고 가면서 아주 즐거워합니다. 암노루처럼 도망가거나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이미 악에 물들어 버린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해결책도,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지요. 그때 아찔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다시 살아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아마 마지막에 조금 일어설 수도 있겠군요. 머리부터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에 말입니다. ……끔찍하죠.
(p.172)

스페인에 잠시 머무를 때 있었던 동네가 까밀로 호세 셀라 거리였다. 노벨상 수상 작가라 들었는데, 스페인 내전 이후의 암울한 상황을 반영하듯 매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다. 광기 어린 인물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조마조마한 가운데, 위의 독백이 나온다. 명문이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8점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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