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건 아닌 거다 _ 박권일 {소수의견} by yiaong

{88만 원 세대}의 공저자로서 꾸준히 정치 사회 비평 글을 써온 박권일의 글 모음집이다. 그동안 시사IN 등을 통해 그의 글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다. 이미 한 번쯤 읽은 글들이 많아서 책을 살지 잠깐 망설였었는데, 다시 읽어도 좋을 글들이 매우 많다. 제목이 '소수의견'인 것이 말해주듯,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늘 주체적으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지식인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매우 많다고 느낀다. (단편적으로 말한다면, 많은 이들이 이명박을 욕하고 노무현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노무현 시대를 그리 낭만적으로 기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글을 통해, 트위터에서의 '농담'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박정근이라는 사진사의 품격 - '나는 국가보안법을 어기지 않았어요, 나도 김정일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라고 항변하기보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한 단계 위에서 대처하고 있는 - 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수 타블로의 학벌에 의심을 품었던 이들을 '냉소적 주체'로 호명하여 설명하는 글, "냉소적 주체는 어떻게 눈먼 정의가 되었나" (p.65)의 분석은 특히나 예리하다고 느꼈다. 요컨대, 너나 나나 모두 자본의 질서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속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 냉소적 주체의 태도인데, 그 숭고한 질서(여기에서는 학벌)를 별 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타블로에게 대중은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어떤 공정한 주장을 하기 위해 '중립적인 시민'임을 입증하고자 하는 지나친 결벽증은 '사회에 냉소적 주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생긴 역설이 아닐까 진단한다. 신실성, 진정성 등을 따지며 자격부터 검증하고자 하는 태도를 벗어나, 그 사람이 주장하는 정의의 내용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밖에 스크랩해두고 싶은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것은 불공평하다" 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으로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전자의 처지에 서면 필연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처지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부자 되기' 처세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하여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한 사람을 수탈하는 상황을 야기하고, 부자에게는 어떤 위험도 초래하지 않는다. (…)

- p.171, '부자에게 유리한 한국형 평등주의' 중에서.


먹고살기 힘든 평범한 서민에게 유감스럽게도 '쌍용차의 전쟁'은 '당신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은 아니었다. (…)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우리의 전쟁'은 공적인 것이며 대의명분의 문제이거나 좀 더 나아가서는 '숭고'의 영역에까지 이른다. 반면 '나의 전쟁'은 사적인 것이며 먹고사는 문제, 구질구질한 '세속'의 영역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담론과, '공과 사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고전자유주의적 담론, 거기에 '먹고사는 얘기 하는 건 천박한 짓'이라는 식의 이상한 유교 사상까지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그야말로 한국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곧 사회문제이며 정치 의제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할 때,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본 서민과 빈곤층이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심지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모순이 벌어진다. 사회 약자니까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야말로 가장 공적인 문제라는 인식, 그것이 '나의 전쟁'과 '당신의 전쟁'을 '우리의 전쟁'으로 만들고 함께 싸워 이길 힘을 줄 수 있다.

- p.181,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까닭' 중에서.



소수의견 - 10점
박권일 지음/자음과모음


덧글

  • 푸른미르 2012/11/11 21:19 #

    저도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밑바닥 계급인데 한 번 봐야겠군요.
  • yiaong 2012/11/11 22:55 #

    예, 추천드릴 만합니다. 얼마 전에 이 책이 무슨 상도 받았대요. :)
  • 명품추리닝 2012/11/12 00:23 #

    죄송하지만요... 저 라이프로그 책 디자인 어떻게 바꾸나요?
    저 연두색 별이 정말 예뻐요. 책 크기도 더 커서 보기 좋고.
  • yiaong 2012/11/12 01:46 #

    아, 저건 알라딘(인터넷서점)에서 가져다 붙인 거랍니다. 그 뭐냐, TTB 링크라고 하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CCL 안내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의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