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기억, 인생 _ Julian Barnes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by yiaong

줄리언 반스의 책이 나왔다는 얘길 듣고 애초에 기대했던 건 {내 말 좀 들어봐 Talking It Over}를 읽으면서 느꼈던 재미였었다. (뭐, 그 책 하나밖에 안 읽어봤다.) 그 분위기와는 좀 다르게, 냉소적인 위트가 종종 웃음을 주지만 전반적으로 무게있고 진지한 소설이다. 시간이란, 기억이란, 인생이란? 그리고 그 안에서 엮이는 관계들이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고 시공간적인 스케일도 작은 편인데, 이렇게 진지하게 저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게다가… 보통 책 뒷표지에 실리는 언론의 찬사들은 대개 호들갑스러운 아부성 빈말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의 띠지에 실린 구절,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책!" 이라는 호들갑에는 동의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킨들 버전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제대로 영어를 이해하면서 읽지는 못했지만.) 캐릭터의 구축이라든지, 이야기를 버무리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작가가 이야기 전체, 한 문장 한 문장을 전부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한 번 더 읽으면서 강하게 느꼈다. (당연한 건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인생의 서글픔이랄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거에 했던 잘못들, 노력한다고 해서 되돌리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닌 것들. 그냥 그렇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서글픔, 무력함. 그리고 우리 삶이라는 게 매우 사소한 것들에 의해서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가져오거나 뒤틀릴 수 있고, 또 일견 안정적으로 보이는 일상도 사실 여러 전제조건들이 아슬아슬하게 충족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이건 요즘 종종 하는 생각이다.)

한편,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십대 때의 이야기에 이어서, 사십 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사실 나는 (아직 사십 년을 안 살아봐서) 그 시간이 잘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사십 년 전의 사건과 기억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이십 년 전의 일에 대해 내가 지금 갖는 어떤 그리움과 회한 같은 것들을, 비슷하게 또는 좀 더 강하게 갖게 되려나? 흠… 하여간, 작가의 원래 의도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이듦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어주는 소설이다.

처음 읽을 때는 지나쳤는데 다시 읽을 때 밑줄 친 부분.

when we are young, we invent different futures for ourselves; when we are old, we invent different pasts for others.
(- Loc 1155)


스스로 자기위안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지난 삶을 허위로라도 상상하고, 비교하고,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소 생뚱맞은 모범적인 결론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10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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