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수 없는 불편함 _ 김진숙 {소금꽃나무} by yiaong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라는 제목의 명문이 책에 실려있기도 하거니와,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몸으로 노동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의 처지는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읽기 불편해서 책을 덮는다고 그 불편한 마음이 가시는 것도 아니고, '에휴, 그래도 나는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으니 다행이야.' 라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거나, '내 자식은 어떻게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지는 않게 해야지!' 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안스러움과 죄책감이 더 겹쳐질 뿐.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할 여지가 없이 떠밀려온 노동자의 삶과 그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당연히 이 책은 노동자 입장의 편향된 시각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사실 나 같은 책상물림이 보기에는 약간 갸웃하게 되는 시각도 엿보인다. 가령, 사용자(자본가)는 무한정의 부를 움켜쥐고 있으므로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통해 최대한의 자기 몫을 빼앗아와도 된다는 듯한 시각이 엿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사용자도 대부분 기업 경영의 어려움과 위험 부담을 지고 있을 것이므로 일방적으로 그들을 적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이고, 한진중공업의 경우에 (그리고 사실, 노사가 갈등을 겪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과연 사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까지 옹호해줄 수 있을 것인가는, 참 곤란한 질문이다. 아무리 노동자가 힘이 세고 노조가 강성인 경우라고 한들, 사용자가 동원할 수 있는 힘 - 여기에는 공권력도 포함될 것이다 - 의 크기를 넘어설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경영 상의 불가피한 어려움으로 인해'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정리해고한 시점에 주주들은 배당금 파티를 벌인,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덕적 해이까지 사측이 보인 마당이라면, 그들을 변호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그 와중에, 2011년 1월 6일에 목숨 걸고 85호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씨는 8월 29일 오늘까지도 그렇게 매달려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집에서 내쫓기거나, 그저 소모품 취급하듯 꿈쩍도 않는 거대자본의 맨얼굴과 뚝심(?)을 우리는 너무도 생생하게 마주하고 살고 있다.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소금꽃나무 (한정판) - 8점
김진숙 지음/후마니타스



덧글

  • 2011/09/06 10:4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yiaong 2011/09/06 13:36 #

    어머나, 기억해 주시기까지..
    감사합니다~ :)
  • yiaong 2011/09/25 01:44 #

    "희망버스는 객관적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런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없는 과잉의 정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국가’에 대한 대책 없는 자기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순수 정치’로서 의미를 가진다.

    (…)

    중요한 것은 정치적 상황을 열어내는 주체화이지, 이 상황의 결과가 아니다. 해결책은 기성 정치인이나 노조 집행부, 그리고 기업인이 이 정치를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치와 그에 대한 해결책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정치가 밀고 간 자리만큼 합리성의 경계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기존의 합리성에 파열을 내는 정치의 출현이다."

    - [이택광] 김진숙 그녀, 자본주의의 안티고네
    http://wallflower.egloos.com/3731063
  • yiaong 2011/11/11 20:48 #

    [미디어오늘] 살아내려온 김진숙, 영도 조선소는 눈물 바다 (2011년 11월 10일)
    - 309일의 고공농성, 김주익이 목 맨 그 자리 김진숙은 살아내려왔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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