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구성, 발로 한 번역 _ {Head First HTML with CSS & XHTML} by yiaong


장난스런 느낌마저 주는 겉표지와 마치 그림책을 보는 듯한 구성 때문에 얕잡아보기 쉽지만, 아주 좋은 책이다. 초보자를 위한 책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들 - 웹 문서의 구조와 스타일을 분리해야 하는 것, 웹 표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 등등 - 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고.

책 전체의 내용 중에서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제 코드의 문자 인코딩이 ISO-8859-1로 되어 있다는 점. 최소한 지금 이 시점에서는 문자 인코딩은 (거의 무조건) UTF-8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기에 좀 아쉬움이 남는다.

단, 여기까지는 이 책의 '원본'에 대한 이야기였고...

한국어 번역판에 대해 말하자면, 책 읽는 내내 실소와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쉽게 술술 읽히면서도 중요한 내용들은 머리에 쏙 들어오도록 매우 잘 만들어진 이 책을, 번역을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감히 초보자에게 선뜻 권할 수가 없게 만들어버렸다. 술술 읽히기는커녕 턱턱 막힌다. 한국어 문장이기는 한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고민하도록 만드는 곳도 많다. 번역자는 과연 자기가 쓴 문장을 이해를 하긴 했을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아래는 p.354의 예이다.

각각의 이러한 문단들을 분리해서 음료와 텍스트의 색을 일치시키도록 꾸밀 수 있을까요? 문제는 “p” 선택자가 모든 <p> 엘리먼트에 적용되는 스타일을 가진 규칙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이 문단들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클래스들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마지막 밑줄 친 문장의 원문은 “That’s where classes come in.” 이다. 의역하자면 “여기가 바로 클래스가 등장할 곳입니다” 또는 “이래서 바로 클래스가 필요합니다”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번역은 참, 어이없다고 할 수밖에.

p.327도 한번 보면,

<p> 엘리먼트의 벽을 빨간색으로 칠하기 원하세요? 문제 없습니다. 오직 문단만이 벽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대신 문단의 background-color 속성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밑줄 친 부분의 원문은 “Only paragraphs don’t have walls, ~” 이다. “다만, 문단에는 벽이 없으니까, ~” 정도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이 번역자는 한국어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가?

특정 단어들의 번역에도 문제가 있다.
p.91의 인터뷰 형식의 글 제목으로 쓴 “드러난 속성들”은 “Attributes Exposed”의 번역인데, 원래 이 부분은 마치 신문이나 잡지의 헤드라인을 뽑듯이 쓴 것이라는 점을 참작하면 “속성을 파헤치다!” 또는 “속성, 집중탐구” 정도의 (선정적인 느낌의) 제목을 달아주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줄 만한데, 개념에 혼동을 줄 수 있는 다음 내용은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p.513~514 등에서 번역자는 “specific”, “specificity”를 “특별한”, “특별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한 엘리먼트에 어떤 스타일 규칙이 적용될 것인가를 따지는 이 상황에서는, 저 단어는 “구체적인”, “구체성” 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p> 엘리먼트에 대한 규칙보다는 특정 id로 지시하는 ‘구체적인’ 바로 그 <p> 엘리먼트에 대한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 아니던가? 그 규칙은 특별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겠지. 번역자는 ‘specific’ 이라는 단어를 기계적으로 ‘special’ 로 취급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책 전체를 통해 의존명사 ‘데’의 띄어쓰기를 모두 틀렸다. 가령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으며”에서 “해결하는데”는 “해결하는 데”로 써야 한다. 이건, 원고의 맞춤법 검사도 제대로 안 한 것이기에 번역자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책임이라고 봐야 하겠다. 좋은 책을 가져다가 이런 식으로 번역해서 내놓다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Head First HTML with CSS & XHTML (Paperback) - 9점
O'Reilly & Associates, Inc. 지음/O'Reilly & Associates


Head First HTML with CSS & XHTML - 4점
에릭 프리먼.엘리자베스 프리먼 지음, 홍형경 옮김/한빛미디어



덧글

  • 히무라 2011/05/27 09:17 #

    사실 번역보다보면 취미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더 나아 보일때가 종종 있습니다.
  • yiaong 2011/05/27 13:14 #

    네. 그래서 잘 번역한 책이나 글 보면 괜히 더 반갑고 고맙고 그렇더군요.
  • Sakiel 2011/05/27 12:48 #

    그냥 원서 보는게 낫겠네요.. 컴퓨터관련 원서가 읽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 yiaong 2011/05/27 13:16 #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생각에 번역서를 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 책의 경우에는 정말 원서 보는 게 낫겠어요.
  • skysurfr 2011/05/27 22:10 # 삭제

    조금만(...) 참으면 보고 공부하는데는 무리 없습니다.
  • yiaong 2011/05/28 00:47 #

    ^^; 뭐 그렇기도 합니다만.. 내 돈 내고 책 사서 '참으면서' 봐야 하는 게 안 참아지더라고요.
    게다가 책을 너무 무성의하게 만들었다는 느낌까지 드니까 말이죠.
  • passerby 2012/05/17 21:22 # 삭제

    위에 p354 의 'That'은 앞전에 언급한 "따라서 어떻게 하면 이 문단들을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요?"라고 언급한 문장을 받는 말인것 같은데요.. 따라서 직역하면, “여기가 바로 클래스가 등장할 곳입니다”가 아니라, "그것은 클래스들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가 맞는 문장이고, 우리 어법에 맞게 고쳐서 다시 얘기하면, "앞서 언급한 사항들은 클레스(Classes)들이 어디에서 오느냐에 달린 문제입니다."가 됩니다.


    또한, p327의 문장에서 쓰이는 'only'가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로 쓰이면"…하지 않다면,"라는 의미(대화체)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이때, 해당 '절'을 직역하면 "문장들이 벽을 가지지 않으면,"이라고 해석될 수 있군요(이 때는 번역자가 틀렸군요!).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specific'은 언뜻 보면, 영한사전의 뜻을 그대로 '구체적인'이라는 낱말이 더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이라는 우리말은 '갖출 구 ', '몸 체', '과녁 적'이란 한자어가 모여 만든 낱말로, '지각할 수 있도록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는'라는 의미하는 것이고, '어떤 큰 범주에서 그 하위의 특정한 것'을 지칭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궁금하시면, 국어선생님에게 물어보세요.)

    따라서, 이때, 어울리는 문장은 '특별한'이 됩니다.

    위와 같이, 'specific'이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일본식의 한자어를 쓰는 영한 사전이 시중에 범람하고, 둘째로 우리가 우리의 낱말(예로 '특별한' 같은)의 정확한 본 뜻을 잘 모르고 사용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이 외에 기타 번역들은 번역자가 틀린것이 아니라, 영어식 말투를 우리 어법에 맞지 않게 번역을 하여 해석이 다소 어렵게 느껴져, 이를 틀린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번역자가 다소 의도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는 아름다운 우리 말의 어법에 다소 어긋나는 문체이지만, 원서의 느낌을 잘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아주 잘 된 번역이라고 판단됩니다.
  • yiaong 2012/05/25 00:12 #

    상세한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체적' 이라는 말뜻에 대해서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네요. 덕분에 한 번 더 되짚어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특정한' 이라고 쓰는 게 적당하다 싶네요.)
    단어의 본래 뜻이 무엇인지 밝히는 작업은 의미있는 일이기는 한데 과연 그것이 정말 맞는지 논란의 여지도 있을 것 같고, 번역에 있어서 오히려 읽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 번역서를 다 읽어본 입장에서 보자면, 원서의 느낌을 잘 전달하는 잘 된 번역이라는 평가에는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 이게 혹시 문학 작품이라면 또 모를까, 기술 서적에서 원천 언어에 가깝게 번역을 하는 태도가 좋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차원까지도 아니고.. 그냥 좀 허술하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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