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짚고 넘어가야 할 실패의 기록 _ 한윤형 {안티조선 운동사} by yiaong


사실 이런 식의 감상은 지은이 스스로도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한윤형, 해냈구나!' 였다. 지은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멋지게 해냈다는 느낌이었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로서, 또 그 운동의 시작과 끝을 지켜본 관찰자이자 성실한 기록자로서 한윤형은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와 그 무대에 등장한 인물들, 그 배경이 된 시대 상황과 이슈들을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전달해준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쉽게 뜨거워졌다가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인 우리들에게, 이 꼼꼼한 기록은 지난 십여 년을 돌아보며 자기자신을 반추하게 만든다. 나 또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곳이 되기를 기대했던 한 소시민으로서, 나쁜 신문은 없어지기를 바랬고 나쁜 당은 힘을 잃기를 바랬다. 그러면서도 사실 그때그때 정확히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고, 그냥 쉽게 '네 편, 내 편'을 갈라서 화내고 또 좋아했던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 책은 묻는다. (가령) 조중동이 나쁜 신문이고, 참여정부가 조중동이랑 싸웠다고 해서, 그 사실만으로 참여정부가 옳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비판은 당파성이 아니라 공정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이른바 진보·개혁 언론으로 분류되는 곳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인데, 실상 그러지 못했던 역사를 -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실패하고 말았는가를 - 이 책이 들려주고 있다고 하겠다.

보너스로, 언론운동이라는 이야기축을 따라 서술되는 이 '역사'를 통해, 우리는 특히 참여정부 또는 노무현 정권의 공과를 차분히 되짚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만 사라지면, 혹은 삼성재벌에만 반대하면 좋은 세상이 올까?' 라는 질문도 같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신문에 비해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고, 기술 진보에 따른 인터넷 매체가 등장하고, 언론의 광고 의존도 즉 기업에의 의존도가 매우 커진 환경에서, 언론은 어떻게 '공론장'으로서의 제자리를 잡을 것인가 하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언론, 과연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키보드워리어'로서 인터넷 세상에서 산전수전 겪은 지은이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인터넷 미디어에 대한 가치 평가 또한 명확하다. 자기 입맛에 맞는 글들만 취사선택해서 보기 쉬운, 그런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끼리만 모이는 '사이버 발칸화'가 이루어지기 쉬운 인터넷은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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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우리 사회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열폭(열등감 폭발)'을 소개한 지은이의 설명이 매우 명쾌하게 다가왔고(p284), 강준만의 업적과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한 부분, 또 변희재라는 인물과 그의 '변절'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한윤형의 공정성에 동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스개로) 덧붙이자면, 대한민국에서 글쓰는 것으로는 밥벌이하기가 쉽지 않음을 간혹 블로그를 통해 토로하던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서 고도의 영특한 전술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몇 개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전국의 신문방송학과들의 교과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참고도서로 이 책이 지정될 것을 노리는 노림수가 있지 않았을까? 부디 그의 야욕이 이루어지길 빈다. :)


안티조선 운동사 - 10점
한윤형 지음/텍스트


덧글

  • 2011/02/22 15:29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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