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입견이 필요할까? _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Why Men Don't Listen & Women Can't Read Maps} by yiaong


좀 쑥스럽지만 고백하자면, 연애 사업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과업 중 하나다. 그걸 옆에서 걱정해주는 이뿐 친구가 읽어 보라고 권해준 책. :)

하지만.. 그다지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럴듯하게 여겨지는 부분도 많이 있긴 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꺼림칙한 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은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고는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엄밀한 관찰과 실험,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자료를 갖고 하는 이야기인지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제시하자면 책이 너무 딱딱해질 것을 우려해서 일부러 부드러운 어조로 얘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같은 (어쩔 수 없이 전형적인 남성성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뭔가 좀 허술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말하는 방법상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는데, 같은 얘기가 계속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반쯤 읽고 나면 벌써 지루한 생각이 든다. '한 스무 페이지 정도면 충분히 끝날 내용을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얘기하고 있지?' 하는 (지극히 남성다운)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러다 보니) 주장하는 논지의 일관성이 흔들리는 듯한 부분도 있다. 책 전반적으로는 '이미 다르게 생겨먹은 남녀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장을 펼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다고 생물학의 노예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 두 가지의 변증법적 합을 추구하는 게 최종 결론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이 사람들이 좀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 보였다.

결정적으로 꺼려지는 점은 이런 것들이다. 혈액형 따위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을 내가 무척 혐오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데, 이러한 분석들은 (설령 그것이 다 사실이라 할지라도) 내가 일상 생활에서 늘 새롭게 만나게 되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남자니까 이렇게 대해야겠군.', '이 여자는 이런 걸 싫어할 테니 하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걸 모르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오히려 '사람은 다 똑같아' 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아예, 백지 상태로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에 대한 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가는 방법은 어떨까. 너무 무모한가?
난 차라리 그런 방법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남자라서 이렇군' 하는 것보다는 '이 사람은 이런 면을 가지고 있군' 하고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것이, 좀 더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이기는 하겠지만 독특한 개개인을 일정한 틀에 가두어버리는 잘못을 범할 확률은 더 낮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예를 들어 정치 같은 분야는 적성 혹은 성향이 여성에게는 맞지 않는 분야라고 해서 그냥 남자들끼리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결정되는 여러 정책들은 우리 일상 생활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여성성'을 잘 지켜가기 위해서라도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관계, 나아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평생을 공들여서 만들어가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정말.

(음.. 잘 안 풀리는 연애 사업을 앞으로는 잘 좀 해보라고 책을 줬더니 이런 식으로 분석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 쑥이양이 답답해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ㅎㅎ)

ps. 어쨌거나 이 책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얼마간 여성적인 정서를 갖고 있기는 해도 그 근본은 남자임에 틀림없다. 하하하!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을 애매한 표현보다는, 정확한 의미를 가진 용어를 사용하여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지 않은가?
(가만히 보면 저 여성적인 정서란 것도 어느 정도는 학습으로, 의지적으로 형성된 것 같기도 하고. --a)


말을 듣지 않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 4점
앨런 피즈 외 지음, 이종인 옮김/가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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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쑥 2005/03/13 20:01
ㅋㅋㅋ 그래도 이뿐칭구라는 말에 모든게 오케입니다

베이비똘 2005/03/13 22:29
그래, 그래, 오빠 하고싶은대로 해요.
그래야 오래살아.

yiaong 2005/03/13 23:24
응..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할께.
에휴.. --;

발도제 2005/03/14 11:52
내가 볼 때 야옹님의 생각과 행동은 근본이 남자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지나치게 강렬한 5번 유형이라서 그런게 아닐까나....(이런 책을 보면서도 앞뒤를 따지는...)

yiaong 2005/03/14 12:54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조차도 이 책에 따르면 남자들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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