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 이슬람에서 본 기독교 (2009년 5월 18일, 청파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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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8일,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매달 주관하는 예수포럼에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가 와서 {이슬람에서 본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장난꾸러기 같은 친근한 인상에, 청산유수로 아주 재밌게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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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1년째 현장에서 발로 뛰어다니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직접 만나본 무슬림들과 간접적으로 매체를 통해 접하는 무슬림들이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에 해결 방법은 없는지, 그들이 바라보는 기독교는 어떠한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무슬림들은 사실은 참 괜찮은 사람들이다. 신문은 본래 사건 사고 중심일 수밖에 없어서 매체를 통해서는 그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슬람에 대해 적대적 이해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한계도 있다. 한편, 테러와 여성에 대한 억압 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리스트는 대다수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Organisation of the Islamic Conference (OIC)에 가입한 57개국 가운데에서 급진적인 테러리즘 세력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러니, 비율로 보자면 95% 이상인 건전한 이슬람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와 구별하고 우리가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평소에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아랍/이슬람은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다. 다음 단어들을 보자 - 비누, 파자마, 오렌지, 커피, 자스민, 튤립, music(음악), physics(물리학), chemistry(화학), astronomy(천문학), algebra(대수학), zero(영), 알코올, 알칼리. 이것들 모두 아랍어에서 온 말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신라, 고려 시대부터 아랍과 교역이 있었다. 고려말, 아랍인들이 ‘예궁’이라는 사원을 짓고 종교생활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이 정기적으로 회회사문을 초청해서 회회축송을 올리게 하였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 세종대왕이 무슬림들의 코란 낭송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세종 시대의 문화적 르네상스가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었을까? 이것에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있을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지금도 사용하는 ‘음력’ 달력도 이슬람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 초까지 사용되던 ‘중국 수시력’은 이슬람 역법에 중국의 기후 자료(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라든지)를 입혀서 만든 것이어서 우리나라에는 잘 맞지 않았다. 이에 정인지와 그의 연구보조원들이 중국에 가서 유학하면서 그 원리를 연구하고, 우리나라의 데이타베이스를 적용하여 만든 것이 ‘칠정산외편’이며 이것이 우리가 쓰는 음력이 되었다.

그런데, 신라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던 이슬람 사람들은 그 뒤에 어디로 갔을까? 1427년 세종때 예조의 상소 내용이 있는데 “(이슬람 인들이 행하는) 오랑캐 습속은 버리도록 해야 한다” 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결국 조선사회에 흡수되었고, 현재까지도 있는 몇몇 성씨의 가문은 이들을 시조로 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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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라는 종교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알라’를 믿는 종교라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알라’는 ‘신’의 아랍어 표기일 뿐이다. 그러니 알라라는 이름의 또다른 신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알라신’ 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아랍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일러 ‘알라’로 쓰고 또 그렇게 읽는다. 그렇다면,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같은 신을 믿는 것인데 왜 그렇게 싸우나? 창세기부터 시작하는 구약성서는 공유하지만, 예수에 대한 태도에 따라 세 종교가 나뉜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부정하는데, 이로 인한 반작용으로 반유대주의anti-semitism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Holocaust가 자행될 때 유럽과 미국은 이에 대해 침묵하였는데 그 때문에 유럽과 미국은 그 이후에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심적 부담을 지게 되었다.

그럼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어떻게 보는가? 이슬람이 보는 예수는 가장 뛰어난 하나님(즉 알라)의 예언자이다. 그러나 신성은 없고, 대신에 오류는 없는 인격체이다. 그렇다면 마호멧은? 예수 이후의 최후의 예언자이고, 최종적인 복음을 전한 선지자이며 평범한 인격체이다. 코란에 묘사된 예수와 마호멧을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코란에서도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인정하고, 예수의 생애와 기적도 상세하게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기록의 양도 많다. 반면, 마호멧은 태몽 하나 없이 평범하게 태어났고, 마호멧이 일으킨 기적은 없다. 기적을 일으켜보려다 실패해서 도망간 에피소드 하나가 있을 뿐이다. 또, 여러 이슬람 종파 중 온건하고 신도 수도 많은 여러 학파에서, 마호멧의 재림 이야기는 없는 반면에 최후 심판의 때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믿는다. 무슬림들은 우리 생각보다 더 기독교를 가까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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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수단 정도 외에는 이슬람법이 정치 사회적으로 주된 영향을 끼치는 나라는 없다. 간통죄에 대해 ‘돌을 던져 죽이는’ 처벌을 하는 나라는 전체 이슬람 국가 중 두 나라 뿐이고, 터키는 간통죄를 폐지하기까지 하였다. 7세기에 만들어진 계율이 1400년이 지난 오늘날 그대로 맞을 리가 있겠는가? 결국 하나님 뜻을 어떻게 재해석하느냐가 문제이다. 2005년에야 여성참정권이 생긴 나라가 있는 등 사회적인 성숙도에 따라서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조만간 후진적인 제도와 질서는 다 무너질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기독교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기독교가 들어온 과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나라의 가난과 교육 문제 등에 힘써줘야 한다. 성경을 들이미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이다! 신학교에 인류학과가 있어야 이런 이야기들을 제대로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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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간의 보충 설명)

1. 아랍과 이슬람은 다르다 - 일부다처제, 여성 할례 등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특성들은 ‘이슬람’의 특성이 아니라 ‘아랍’의 유목적 관습에서 온 것이다. 이는 고대 아랍의 유목사회는 여성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였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부다처에 대해서 마호멧은 ‘4명까지’로 정하고 있는데 이는 그 이전에 무제한으로 가능하던 것을 ‘제한’한 것이었다. 현대를 보면,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천차만별이다. 아랍 지역은 아직도 80%가 문맹이고 전근대적 사회이지만 비 아랍권은 다르다. 터키에서 민선 여성 수상이었던 탄수 칠레르Tansu Çiller가 통과시킨 ‘남편의 성을 아내의 성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것을 보더라도,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며 지역과 역사에 따라 다른 상황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침략과 약탈은 아랍의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이었다. 한 예로,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후세인 녀석, 이번에는 좀 심했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정도의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고. 한편, 그렇게 늘 침략과 약탈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남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3. 기독교 NGO 단체가 활동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유목적 삶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회를 외부에서 어찌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을 존중하면서도 최소한의 보편 가치는 지키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활동이 어려고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선험적인 종교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중동 분쟁 이후에 거의 영성적(spiritual)인 수준의 반미감정, 미국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반감을 갖고 있는 어려움도 있다. 그 대신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기 때문에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 터키는 한국을 형제 국가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4. 탈레반 등의 과격한 원리주의자들은 정부가 힘을 제대로 못쓰는 분쟁지역에서만 활발하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경우는 단순히 반미감정으로 인해 알카에다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모임, 2009년 6월 22일에는 문동환 목사님께서 오신다고 한다.)
--> 다시 메일이 왔다. 문동환 목사님께서 건강 문제로 못하시게 됐고, 2009년 7월 6일로 날짜를 미루고 김상봉 교수님을 모시기로 했다고 한다.

by yiaong | 2009/06/09 20:48 | 강연 conferencia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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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yiaong at 2009/06/09 20:51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위험을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Commented by 포스트 at 2009/06/17 15:41
"비율로 보자면 95% 이상인 건전한 이슬람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와 구별하고 우리가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 대목은 참 웃기는 논리입니다. 5% 테러리스트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대한민국을 예로들어 봅시다. 인구를 5천만명(실제는 4천8백만명이지만) 중 5%는 250만명입니다. 만약 대한민국에 250만명의 테러리스트가 있다면 마음놓고 걸어다니겠습니까? 그것도 종교적 우월감을 갖고 "지하드(성전)" 교리를 갖고 있는 집단이 250만명이라면 말입니다. 여성과 아이들을 살해해서 버리는 사람들이 250만명이라면 5%니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슬람 테러리즘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희수 교수의 말을 빌자면
Commented by 포스트 at 2009/06/17 15:42
이슬람 테러를 보면서도 이런 말씀하시는 이희수 교수님은 종교가 무엇인가요?
Commented by yiaong at 2009/06/18 00:43
이분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고요, 저도 강연을 들으면서 좀 고개를 갸웃했던 내용이기는 합니다. 비율이 작더라도 그들이 던지는 충격은 작지 않으니까요.
Commented by at 2009/06/19 06:20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는 것이나, 지식인이 된다는 것에 다는 아니지만 좀 회의를 느꼈었는데 여기 오니까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아기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조만간 나도 이 책들 다 읽고 싶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내일은 아가 돌잔치를 하고 모레는 동생 상견례가 있어.아가씨가 진영씨만큼 착하고 예쁘단다.밥 잘 챙겨 먹어라 !
Commented by yiaong at 2009/06/19 11:06
축하할 일이 많군요! 동생은 내가 아는 그 동생일 테고. ^^
Commented by yiaong at 2009/07/22 14:07
[이희수] “위구르와 한국은 둘도 없는 형제” (시사IN, 2009년 7월 13일)
... 투르크계 위구르인은 한국인과 가장 가까운 민족이고 알타이 문화를 공유한다. 삼국 시대와 고려·조선 시대에도 영향을 크게 주고받았다. 한국전쟁 때 투르크족은 유엔군과 ‘중공군’으로 나뉘어 참전했다.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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