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자의 소리를 들어라 _ 한윤형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by yiaong


한윤형의 첫 책이 드디어 나왔다.

‘한윤형’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지 잠깐 머뭇했다. 책 제목에 붙은 대로 키보드워리어? 썩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실제 이 사람이 쓰는 글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워보이는 경향이 있다. 논객? 이것도 좀 그것과 비슷하고. 대학생? 정치평론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면만 드러내는 말이고. 그래서 그냥 ‘한윤형’으로 칭했다. 그 자신이 이전에 친숙했던 아이디 ‘아흐리만’을 떼어내고 - ‘이름 자체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p144) - 이제 본명만으로 충분하다고 하기도 했고, 나로서는 그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더 이상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다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에 대한 첫인상은, 기대했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들어가는 글에서 지은이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들보다는 자전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좀 말랑말랑해보였는데, 하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서울대학교와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한 논술대회에서 (하필이면) 대상을 탔으나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 “왜 내 인생의 유일한 1등이 그때 작렬한 것일까.” - 로 가볍게 시작한 이 책은, 인터넷에서 주로 노는 한 청년의 개인적인 경험담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 사회와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맹점들을 예리하게 찌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지은이가 외치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다.

키보드워리어로서 한윤형의 궤적은 안티조선운동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큰 싸움은 ‘노빠’ - 맹목적 노무현 추종자들 - 들과의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주요 공격대상은 조선일보였다’ 고 소개한 경향신문 기사 내용은 그다지 적절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피살당한 김선일 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 홀로 외롭게 싸워야 했을 때의 이야기는 (비로소 이 책의 제목에 걸맞게) 전장의 긴박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당시 내가 상대해야 할 부류는 무려 세 종류였다. 하나는 특수부대를 파병하여 테러리스트들을 박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군사주의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노무현 대통령에겐 책임이 없고 그에게 책임을 물리려는 좌파들에게 모종의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노빠들이었으며, 마지막으론 이 사건에서 국가가 국민에 대해 저지른 살해의 순간이 언제인지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좌파들이었다. (p114)


그러나 (이라크 파병 강행과) 김선일 사건은 다릅니다. 이 사건은 박용진 동지의 제안글이나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결의문에서도 지적하듯, 국가에 의한 선행살인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라크 테러범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예정된 시한을 18시간이나 거슬러서 ‘파병 재확인’ 입장을 밝힐 때에, 김선일은 이미 살해된 것입니다. 이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을 뒷받침하는, 국가와 개인 간의 선험적인 사회계약에 대한 의도적인 위반으로,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정권이 더 이상 통치의 정당성을 가지지 못함은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129, 당시 진보누리 게시판에 쓴 글)


하지만 한윤형의 싸움은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그치고 말았고, 그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후 마음 편히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이 싸움은 그에게 큰 상처와 눈물을 안겨다주게 된다.

이명박 시대에 ‘실정(失政) 종합 세트’와 ‘국민 탄압 패키지 상품’을 맛본 이들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개탄하고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 체험이 2004년 6월에 있었다. 이때부터는 세상에서 놀랄 일이 하나도 없었다. (p135)


비슷한 발언이 에필로그에도 실려 있다.

최근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 이명박 시대, 혹은 지금의 한국 사회 그 자체. 비판하기가 너무 쉬워 문학과 비평을 말살하는 정부, 그리고 그 정부를 너무 ‘쉽게’ 비판하는 이른바 ‘시민’들. 그 사이에서 글쓰기는 질식한다. (p182)


나도 참으로 무디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살고 있다는 반성을 해본다. 참으로 어이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대통령이 완전 삽질 막가파라는 둥 뇌 용량이 얼마라는 둥 하면서 안주거리로 씹고만 앉아있다가는 4년, 5년 뒤가 되어도 그다지 달라지는 것이 없을 수 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앞뒤가 안 맞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나, 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를 해주는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책 자체가 지은이의 블로그를 지시하고 있는 고도의 미끼이기도 하므로) 한윤형의 블로그도 다시 한 번 여기에 링크해둔다.

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 http://yhhan.tistory.com/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 8점
한윤형 지음/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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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장기하 2009/04/10 19:59 # 삭제

    한윤형이 누구야 대체?
  • yiaong 2009/04/10 22:33 #

    이 책을 읽어보시면 잘 아실 수 있겠습니다. :)
    근데, 혹시 노래하시나요?
  • 성호 2009/04/11 15:13 # 삭제

    아무리 생각해도 책에 본인 얼굴을 개재한건 안습 :-)
  • yiaong 2009/04/11 22:22 #

    귀여운 인상인데 뭘. 캐리커처가 안 이쁘게 그려져서 좀 아쉽긴 하지만.

    (쉿! 혹시 지은이가 여기 들여다볼지도 몰라..)
  • 한윤형 2009/04/12 11:45 # 삭제

    사진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 (저도 당황했습니다. ;;;; )

    사진찍히는 거 싫어하는 편인데 책이라는 게 제 맘대로 되는게 아니더군요. ㅎㅎㅎ

    그래도 실물은 초큼(?) 더 낫습니다...ㅋㄷㅋㄷ
  • yiaong 2009/04/12 18:13 #

    그래도 중간에 들어간 사진들에 대해서는 제 주위에서는 '귀엽다'는 반응들이 중론이었답니다. 너무 미안해(?) 마시길.. ^^
  • 성호 2009/04/13 09:06 # 삭제

    헛~! 정말로 저자께서 들여다 보셨네요 ^^;
    이 실례는 널리 책 홍보하는 것으로 갚겠습니다.
  • 한윤형 2009/04/14 12:18 # 삭제

    우왕ㅋ굳ㅋ
  • yiaong 2009/04/14 17:36 #

    흐흐흐.. 게다가 저희 교회 독서모임에서도 이 책을 읽자고 제가 강력히 추천해서,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같이 읽기로 했답니다. ^^
  • stk 2009/04/20 21:47 # 삭제

    지금 이 순간 기필코 이 책은 사고야만다는 일념이지만

    책과 나 사이에 쌓인 담의 높이가 너무 높군요.;;
  • yiaong 2009/04/20 23:05 #

    그러시다면 그 일념으로!
    일단 사버리시는 겁니다. 읽는 건 나중 문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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