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깊은 눈 _ 도정일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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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도정일의 글 여섯 편을 모은 작은 책. 대부분 오래 전에 쓰여진 글들이어서인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적들을 하고 있고, 학자의 거시적이고 깊은 눈과 잘 다듬어진 수려한 문장을 접할 수 있어서 감탄하며 읽었다.

밑줄 친 몇 부분을 메모해본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때로 지식인이라 불리는 것은 그가 핵탄 제조기술을 가진 과학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핵탄 제조계획(맨해튼 프로젝트)에 그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는 수단으로서의 방법지를 가진 과학자였지만 그의 지식이 '어디에' 쓰일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고 자신의 지식이 쓰일 '목적'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질문했던 사람이다. 가장 간단하게, 이것이 지식기술자와 지식인의 차이이다. (p155)


20세기 후반 서구 인문학은 역설적이게도 전통적 인문주의의 기반이 되어 온 '휴머니즘'의 기본 전제와 명제들을 가차없이 심문, 해체, 파괴하는 기이한 방법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바로 이 사실이 인문학의 활력을 유지시킨 비밀이다. (.. 중략 ..)
서구 인문학이 근대적 자율 주체를 심문하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신화를 벗기고 이데올로기·텍스트·타자-타자성의 개념 등으로 주체의 성립과 분열의 조건을 고찰하고 인종·성·계급 등의 범주로 억압 담론들의 역사적 전개를 비판하며 자본-시장-지식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는 동안 한국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는 서구 이론들이 개발한 방법, 개념, 이슈들을 우리가 고스란히 수입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의제들을 정당하게 학문의 영역에서 정의하고 그것들을 다루어 내기 위한 이론-방법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못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p170)



책 제목에 제시된 '시장전체주의'에 대한 언급은 이러하다.

셋째, 시장전체주의는 '사회적 이성(social rationality)의 마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다. 시장 효율성, 경제적 부가가치의 산출 여부, 시장 기여도 이외의 사항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 절하되고 시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이성적·비판적 담론들은 '헛소리'가 되며 도구적·기능적 이성 이외에는 어떤 것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사태가 이 단계에 이르면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들은 존립의 기반을 상실하고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는 극히 중요한 사회적 능력은 사적 이해 집단들의 싸움판에 끼여 질식한다. 과거 정치전체주의가 사회적 이성의 학살을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것과 유사하게 시장전체주의에서도 공적 이성은 학살 대상이 되고 그 사용 능력은 마비된다.

사회에서의 시장의 기능과 위치는 물론 중요하다. 시장, 기업, 금융 등의 영역에서 시장 원리는 합리성의 한 모형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요점은 시장 기제의 중요성을 부정하자는 것도, 경쟁적 시장 체제의 대두라는 현실을 부인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거듭거듭 강조하는 것은 시장 논리를 사회의 전 영역에 확대하고 그 확대 위에서 거의 모든 정책 의제들을 결정, 실행, 평가하는 시장전체주의의 '반사회성'과 '반인간성'이라는 문제이다. 경쟁과 생존만이 유일한 명령이 되지 않는 공간을 개척하기 - 이것이 인류사에서 '사회'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유이다. (p145)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 10점
도정일 지음/생각의나무



by yiaong | 2009/02/03 15:00 | 책 libro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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