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유머 _ Romain Gary {새벽의 약속 La promesse de l'aube} by yiaong


로맹 가리. 대단한 작가를 또 하나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뜨거운 애정 속에서 자신이 자라오고 살아낸, 삶의 투쟁을 그려보여주는 이 자전적 소설을 통해. 냉소적인 듯하지만 유머와 폭소가 넘치고, 수술칼처럼 예리한 분석이 있는 동시에 예술을 향한 절망적인 열정의 몸부림이 드러나는 이 사람의 일대기를 통해.

한 개인의 일생이 어쩌면 이렇게도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싶어 경탄하게 되기도 하고,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솜씨에 넋이 나갈 지경이 되기도 한다. 한 예로 1부 마지막 부분에서 들려주는 어머니와의 비장한 에피소드는 그 전까지 유쾌하고 아기자기하던 유년시절의 이야기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육중한 것이었다. 또 자신의 근친상간적 경향을 의심할 독자들을 위해 10장 뒷부분에서 풀어놓는 이야기는 자신감에 차 있고 대담하다. "너희들이 뭐라고 얘기할는지 다 알아. 내가 이런 대답을 하면 또 뭐라고 생각할지도. 하지만 잘 봐봐. 내가 정말 그런 것 같니? 그리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니?"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 사람의 예술론과 유머에 대한 태도.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최고의 순간', 결코 얻을 수 없는 '자기 조건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지고한 순간'. 가 닿을 수 없지만 계속해서 죽을 힘을 다해 그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 예술에 대한 고뇌를 드러내는 고백은 여러 번 되풀이되고 급기야 파우스트의 진실을 폭로한다. "진정한 비극, 그것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사실이다."(p134) '고양이에게 주는 죽 같은 것일 뿐인 성공과 돈과 대중의 찬사'에나 만족하는 가짜 예술가들 말고, 진짜 예술가들의 고뇌가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이 사람을 한층 더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의 고통 속에 매몰되어 세상 모든 짐을 홀로 다 지고 가는 듯 심각하게 인상쓰는 것이 아니라 유머로써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하여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는 자기성찰적인 태도 때문이다.

이렇다 할 문학적 영향을 받지 않고, 본능적으로 나는 유머라는 것을 발견해내었다. 현실이 우리를 찍어 넘어뜨리는 바로 그 순간에도 현실에서 뇌관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완전히 만족스럽고 능란한 방법 말이다. 유머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누구도 내게서 그 무기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또한 나는 기꺼이, 그 무기가 내 자신을 향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나 '자아'를 통해 그 유머가 바로 우리의 근원적 조건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요,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의 확인이다. (20장, p165)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유머'는 이 책을 떠받치고 있는 든든한 기둥들이다.

(약간 궁금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2차대전이라는 상황, 전쟁이라는 극한의 부조리한 상황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안온한 삶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나와는 달리, 그 당시에는 전쟁이라는 것이 확정적으로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1차원적으로 단순히 생각하기 - 전쟁은 나쁜 것, 사람 죽이는 건 나쁜 것 - 에는 좀 미안한 부분이 있다.)


{새벽의 약속} 책 표지새벽의 약속 - 10점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문학과지성사



+ 원서 링크:
La Promesse de l'aube - Amazon.fr

++ 독서모임 때 책 내용 정리했던 파일 첨부.
Romain_Gary_{Promise_at_Dawn}_summary.pdf (102KB,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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