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해야 할 설교 _ Jonathan Sacks {차이의 존중 Dignity of Difference} by yiaong


'문명의 충돌을 어떻게 피할까'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유대교 지도자인 조너선 색스는 종교와 도덕을 새삼 강조하며 소극적인 관용을 넘어선 적극적인 '차이의 존중'을 설파한다.

지은이가 유대교 랍비인 덕에, '우리가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들을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전투에서 굴복시킨 이방 족속을 모두 멸하라는 가차없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는 신의 모습도 드러나는 구약성서를 갖고, 그 편협함과 잔인함은 묻어둔 채 일부러 다양성과 화해의 모티브들만 가져와서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색함도 한편으로는 느껴지기도 한다.
(독서모임 선생님 말씀으로는 구약에는 그러한 여러 면면들 -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 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중에서 예언자적 전통에 입각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은이가 종교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두루두루 연구하고 독서한 사람인 덕에, 현 시대의 진단에 대한 주요 논점들 - 예를 들어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 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의 단초를 얻을 수가 있어서 유익했다.
단, 서로 다른 '보편주의'의 충돌이 갈등을 빚게 되었다는 진단을 내리고 그 원인을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플라톤의 유령?)에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은, 그에 대한 대안적인 해법을 성서로부터 이끌어내기 위한 다소 무리한 전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의 정치, 경제 시스템의 운영 원리만 가지고서는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며, 대안적 기준을 제시해줄 수 있는 종교(들)와도 대화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책의 내용은 상당 부분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좀 든다. 옮긴이도 후기에서 '공자님 말씀'이란 표현을 썼던데, 논의의 대상이 좀 거시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하면 지은이가 각 국가들의 정책결정권자들과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대자본들을 앉혀놓고 '설교'하는 느낌이 좀 드는 것이다. 그냥 귓등으로 흘려듣는다해도 뭐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은이가 제시하는 운영 원리를 어떤 식으로 시스템 안에 반영하게 할 것인가가 이 책 이후의 (더 큰) 숙제일 듯하다.

* *

인상적이었던 부분 일부 발췌해본다. 다른 책 내용을 인용, 소개한 것들도 있다. (화해와 용서를 다룬 10장의 내용은 참 감동적이었다.)


(p307)---

정의와 용서는 손을 잡고 나란히 가는 덕목이다. 저마다 복수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나,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의는 죄를 개인적인 보복 행위(복수)로 앙갚음하지 않고 비개인적인 법적 절차(응보)에 따라 취급한다. 용서는 정의만으로는 피해자의 감정을 가라앉힐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한다. 증거를 구하고 평결을 내리고 형을 선고해도 피해자의 마음에는 고통과 슬픔의 앙금이 남아 있다. 정의는 비개인적인 도덕 질서의 회복이며 용서는 개인적인 도덕 질서의 회복이다. 정의는 잘못을 바로잡고, 용서는 깨진 관계를 회복한다. 마이모니데스가 말하듯 다른 길은 없다.


(p308)---

화해의 길목을 가로막는 커다란 도덕적 장애는 복수에 대한 욕망이다. 오늘날 복수는 대체로 저열하고 무가치한 감정으로 치부되며, 그렇게 치부되기 때문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것의 도덕적 장악력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다. 그러나 복수는 도덕적으로 이해하면 사자(死者)와의 신의를 지키려는 욕망이며 그들이 남기고 떠난 대의를 받아들여 그들의 영광을 드높이려는 욕망이다. 복수는 세대 간에 신의를 지키는 일이며, 복수가 낳는 폭력은 공동체를 위해 죽은 자들(이들에게 공동체의 합법성이 있으므로)에게 바치는 경배 의식이다. 이처럼 화해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폭력이라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대안적인 도덕성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테러 행위가 끈질기게 되풀이되는 것도 그것이 윤리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자에 대한 숭배이며 끔찍하고 절대적인 존경의 표현이다.

- 마이클 이그나티에프Michael Ignatieff, {The Warrior's Honor}



(p316)---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당신에게 미리 사정을 설명한다고 가정하자.
"이제 하나의 세상을 만들 참인데 구원 받을지는 확실치 않고
모든 참가자가 최선을 다한다는 조건에서만 완성될 수 있는 세상이네.
자네에게도 참여할 기회를 주겠네. 하지만 안전은 보장 못해.
진짜 위험으로 가득찬 진짜 모험이지. 하지만 이겨낼 수도 있어.
진정한 협동이 필요한 사회의 계획이네. 어때, 자네도 참여할 텐가?
자네 자신이나 다른 참가자가 충분히 위험에 맞설 능력이 있다고 믿나?"

(그러면 당신은) 그처럼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우주의 일부가 될 바에는
차라리 가끔 악마의 목소리에 깨어났을 뿐인
저 실체 없는 수면(睡眠) 속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할 셈인가).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프래그머티즘 Pragm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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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존중 - 7점
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말글빛냄



+ 독서모임 선생님께서 지적한 오자 몇 개. 책이 아주 꼼꼼하게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p87.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종교 예배는 최초의 살인, 즉 최초의 형제 살해 직후에 행해졌다. -> 직전
p88. Volkgest -> Volkgeist (민족정신)
p92. Treenees -> Treeness (이데아 세계에서의 참된 나무)
p108. 逾月節 -> 逾越節 (유월절)
p148. 아라르트헤이트 -> 아파르트헤이트
p300, 301. 출애굽기 -> 창세기 (성서 구절 인용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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