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02일
고백과 초대 _ Edward O. Wilson {생명의 편지 The Creation}
http://yiaong.egloos.com/3976047
평생동안 생물학 연구를 해온 한 과학자가 보내온 따뜻한 편지.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으로 가득한 이 노학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멸종 위협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많은 생물 종들을 안타까와하며 생명 사랑을 역설한다. 익명의 '목사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은 과학자와 종교인의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가 분명히 있음을 시인하면서도, 그럼에도 둘은 결국 같은 지향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위해 같이 손잡고 나가자고 뜨겁게 제안한다. 한마디로, 한 생물학자의 고백을 기록한 생명을 향한 연서이자 그 길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종교와 과학이 같이 손잡을 것을 요청하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자로서의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둘 사이의 차이, 결정적으로 생명의 기원에 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보면 도발일 수도 있고 "손 잡자더니 싸우자는 게냐?" 하는 반응을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난 이게 더 정직하고 발전적인 태도라고 보았다. 말 꺼내면 문제가 될 것 같은 민감한 사안을 묻어두고 친한 척 두루뭉술 넘어가는 것보다는, 애초부터 갖고 있는 시각 차이와 자신이 서 있는 자리 - 입장? - 를 명확히 하고 나서, "이런 차이점이 있음에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더 큰 것이 있지 않은가!" 라며 연대를 호소하는 태도가 소탈하게 느껴졌고 좋았다. 참 과학자답다고나 할까. 꾸밈없이, 정치적 술수를 담지 않은 분명한 언어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그 태도가 좋았다.
짤막한 마지막 장에 나온 그 생명의 기원에 관한 언급은, 내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생명'에 대해서 여태까지 너무 천진난만한 태도로, 즉 아무 고민 없이 지내고 있었다는 반성을 하게 했다. 내 태도는 "신이 진화라는 방법을 통해서 생명을 창조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도의 것이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과학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 결국 나의 태도 또한 '설명하기 힘든 머리아픈 문제는 그냥 신의 몫으로 넘겨버린' 셈이다 (deus ex machina?).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머리 싸매고 연구해오고 있을 과학자들의 노력에 비해, 종교인들은 그것을 너무 쉽고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너무 고민하거나 자책하고 앉아있을 필요는 없다. 일종의 신비의 영역, 혹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영역은 일단 그대로 인정하고 놓아두고, 함께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할 중요하고 시급한 주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지은이가 언급하는 "관리인 정신", 바로 이것은 성서의 창세기 1장을 올바르게 읽었을 때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대해 가져야할 바른 마음 자세이지 않은가. 정복자가 아닌 관리인, 그것이 바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지위이자 책임인 것이고, 이 노학자가 다다른 결론인 동시에, 종교와 과학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튼튼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철저한 유물론자라고도 말할 수 있을 한 생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통해 마음에 품게 된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 그 사랑이 담긴 편지를 받아보는 기분은 가슴 뭉클하다. 현대의 인간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다른 생명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폭력적이지만, 한 종 한 종의 모든 생물은 경이롭고 신비하다. 이 편지를 받아들고 나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생명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 생명의 편지 - ![]() 에드워드 윌슨 지음, 권기호 옮김/사이언스북스 |
ps. 책 만듦새는 참 좋다. 가벼운 종이와 정성이 느껴지는 번역이 읽는 이를 기분 좋게 해준다.
참조 링크:
The Creation: An Appeal to Save Life on Earth - Amazon.com
# by | 2007/12/02 00:46 | 책 libro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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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의 일부를 발췌해볼께요.
"목사님은 하느님이 창조물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은 성서에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2,500년간의 신학과 많은 서구 문명은 그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중히 "아니오."라고 말하겠습니다. 생물은 암호화하는 분자가 일으키는 임의적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에 의해 자기 조직화되었습니다. 이런 설명이 과격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교하게 맞물려 거부할 수 없는 증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지 모르겠지만, 해가 갈수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학적 의문이 생깁니다. 하느님은 정녕 속임수를 잘 써서 그토록 많은 거짓 증거로 세상을 속였는가?" (p230)
이 뒤로는 '진화가 일어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초자연적인 지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지적설계론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실증적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이라는 - 즉, 과학이 아니라는 -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는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그렇지만 종교와 과학은 생명의 보존이라는 목표에서는 함께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구와 경이로운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형이상학적 교의들 간 차이에 상관없이 공동의 목표여야 한다." (p14)
(예: http://peoplesgeography.wordpress.com/2006/08/28/edward-o-wilson-a-scientists-plea-for-christian-environmentalism/ )
그리고 Harvard Divinity School 이라는 곳(^^)에서 사라 코클리(!) 교수 주관으로 열렸던 이벤트도 있었군요!
http://www.hds.harvard.edu/news/events_online/ETC_wilson.html